유리의 성
정치, 경제, 문화, 교육을 비롯 다양한 사회적 기능이 집약된 고도의 도시사회는 대개 그 영역이 한정적임에도 불구하고 인구와 산업 등이 집중되어 있다. 때문에 도시의 발전-진화과정은 언제나 경쟁과 효율을 우선시한다. 도시 안의 현대인에게 여유와 여가 또한 삶의 질적 향상을 위한 충전의 기회보다 훨씬 다층적인 면을 가지게 된다. 김승구의 <진경산수>, <밤섬>, <리버사이드>, <시티라이프>, <이동갈비>, <근교>시리즈는 이러한 도시사회의 다층적 요소들에 천착해온 결과물 들이다. 《유리의 성》은 이 작업들을 통해 도시사회의 다층적 삶의 표상들을 시시때때로 직면해야 하는 현대인의 삶과 그 환경들을 관조하려고 한다.
성냥갑처럼 들어차있는 아파트와 빌딩 사이 도시건축의 가장 큰 덕목 중 하나는 최대치의 용적률을 확보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자연이란 것은 고작 아파트 대단지 한가운데 불편하게 뿌리내린 인공정원 정도다(<진경산수>2010-). 아니면 통제와 방치를 통해서만 자생 가능한 소외된 자연인 밤섬의 존재를 그저 인식하는 일일뿐일 것이다(<밤섬>2011). 이렇듯 효율과 비효율의 극단에서 마주하게 되는 자연에 대한 결핍의 해소들은 바쁜 도시생활 속 사치스러운 여유처럼 현대인의 삶에 위안이 되기도 한다.
한편, 시간과 자본을 투자해야 하는 여가활동은 모두가 예상할 수 없었던 진 풍경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장마철 언제 물이 넘쳐 오를지 모를 상황의 한강공원에서 여가를 보내는 사람들(<리버사이드>2010-)이나 한정된 수용인원의 수를 훨씬 넘긴듯한 도심의 유원지(<시티라이프>2014-)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리고 주말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지만 평일은 존재자체가 의아하게 느껴지는 근교의 식당(<이동갈비>2012-2013),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국적불명의 어색한 풍경들로 가득 찬 도심의 주변(<근교>2013-) 등의 장면들은 일상에서 찾을 수 없는 판타지를 재현하는 과정 중에 생성된 것들이다.
삶을 사는데 있어 보다 나은 환경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이다. 도시에서 이러한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와 대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마저 넉넉지 않아 실현되지 않을 경우 욕구는 목적을 상실한, 가볍고 이질적인 대상들을 만들어낸다. 김승구의 작업들은 곧 삶의 일부분이 되어야 할 여유와 여가가 현대인들에게는 비일상이자 판타지로 변모된 것을 삶의 풍경에서 드러내고 증명한다. 《유리의 성》은 이러한 김승구의 작업을 통해 현대인들 스스로가 원하는 삶의 가치를 고민하고 그 현답을 위한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 김솔, 고은사진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