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김승구는 한국 사회에서만 목격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현상을 오랜 시간 건조한 시선으로 기록해온 사진가다. 그는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마주하게 되는 것들을 주요 소재로 삼는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유토피아의 꿈이 서린 일상의 공간과 어딘지 모르게 어설픈 조형물, 그리고 이들을 만끽하는 군중 등이 대표적인 예다. 다큐멘터리 형식을 근간으로 하는 작업에서 대다수의 사진가는 사진 속 상황에 깊숙이 개입하지만, 김승구는 멀리서 관조하듯 관찰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담아내기 위함이다. 그런 그가 <Better Days>에서 주목한 것은 ‘한국 사회의 여가와 여유’다.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압축성장 국가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같은 비극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 동안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기 때문이다. 도시화 속도, 일인당 국민 소득 증가 비율 등을 나타내는 지표를 살펴보면, 서구 사회가 300년에 걸쳐 이뤄낸 성과를 따라잡는데 한국이 사용한 시간은 고작 30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한강의 기적’이다. 이러한 ‘빨리빨리’의 기적은 한국인의 평범한 일상도 압축시켜버렸다. 한국인은 바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끼는 ‘타임푸어족’이다. OECD 연평균 노동시간 1, 2위를 다툴 정도로 돈 버는 일에 집착하면서, 동시에 돈 쓰는 일도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달력의 검은색 날을 누군가에게 충성을 바치는 데 사용했다면, 빨간색 날은 나와 내 가족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가를 즐기고 약간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상관없다. 번잡한 수영장일지라도 물에 발이라도 한 번 담가야 하고, 근교에 있는 고깃집에서 음주와 가무도 즐겨야 하며, 인근 정원에서 가서 그럴듯한 자연 체험을 해야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다. 김승구가 포착한 여가의 순간들을 지켜보다 보면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애잔함, 기이한 공간을 보며 머금게 되는 조소 등의 다층적인 감정들이 마음을 스쳐 지나간다. 이상과 현실이 이질적인 듯 자연스럽게 혼재된 여가의 현장, 그리고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결코 최선이 아님을 알면서도 결국엔 순응하는 사람들의 모습 모두 압축성장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기는 관행이 됐다. 서구의 경제·사회·문화적 성과를 답습하느라 급급한 나머지 한국이 가진 고유한 정체성을 지키지 못해 혼성모방의 사회가 되었지만, 또 여기에 빨리 적응하다 보니 되레 지금은 이러한 어색한 모습이 한국 고유의 풍경으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그러나 김승구는 한국 사회의 인스턴트식 여가와 여유를 위한 욕망을 비판하지 않는다. 이것이 한국 사회를 특징짓는 특유의 풍경이고, <Better Days>는 이러한 현상을 보여주는데 방점이 찍혀있기 때문이다. “공간 환경은 우리 삶을 규정한다.”라는 르페브르(Lefèbvre)의 말처럼, 그는 우리 주변의 공간 환경을 관찰하고 이를 통해 우리 삶을 돌아보고 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 김승구의 작업은 ‘풍경사진의 총체’다. 그는 <Better Days> 외에도 다양한 소재의 작업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여러 개의 풍경사진 시리즈가 모여 하나의 프로젝트가 되는 방식이다. 흩어져 있을 때는 우리 사회의 일부분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뭉치면 한국 고유의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 된다. 이는 각각의 시리즈는 ‘범주화’요, 프로젝트는 ‘아카이빙’임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그의 작업은 우리의 사회·문화적 현상을 증명하는 근거이자 중요한 연구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양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중요성이 부각될 것이다. 다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사진 공개 방식’이다. 아카이빙 작업은 방대한 사진으로 구성돼야 큰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전시와 출판으로 수백 장의 사진을 보여주자니 물리적 제약이 따르고, 시각적으로 강력한 몇 장의 사진만을 보여주자니 작업의 응집력이 떨어진다. 김승구의 작업은 보는 이가 사진을 통해 우리 삶의 의미를 고민할 때 가치가 극대화되는데, 사진 공개와 연대 사이에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현재진행형, 아니 앞으로 얼마나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할지 가늠이 되질 않는 이 프로젝트에서 과연 그는 어떤 해결책을 준비하고 있을까. ‘워라밸(Work-Life Balance)’ 같은 트렌드에 부합하는 작업을 우선순위에 둔 것을 보면, 일단 그는 각각의 시리즈를 주제 경중에 따라 순차적으로 선보일 요량인 듯하다. 이는 내용과 형식의 강약 조절을 통해 보는 이의 시선을 확실하게 붙들려는 전략이 아닐까 싶다. <Better Days>가 전략적 요충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바라건대 이 작업이 긴 여정의 좋은 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 박이현, 월간사진